바로 ‘K-스페이스X’입니다.
민형배 전남광주시장은 누리호 5차 발사 성공 이후 고흥의 우주산업 육성 계획을 설명하면서 “K-스페이스X 시대를 향한 걸음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습니다. 스페이스X는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미국의 민간 우주기업입니다. 세계적인 우주기업을 목표로 삼겠다는 의미는 이해할 수 있지만, 대한민국의 독자적인 우주산업을 설명하면서 굳이 미국 기업의 이름을 빌려야 했을까요?

대한민국의 로켓은 이미 고흥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10월 7일 낮 12시 25분, 누리호는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대에서 이륙했습니다. 이번 발사는 역대 가장 많은 15기의 위성을 탑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특히 핵심 임무였던 초소형 군집위성 ‘네온샛’ 2~6호 5기가 모두 정상적으로 분리됐습니다. 다만 함께 실린 큐브위성 10기 가운데 1기는 사출관 덮개가 열리지 않아 분리되지 못했습니다. 누리호는 2022년 2차 발사부터 이번 5차 발사까지 네 차례 연속 핵심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이제 대한민국은 단순히 로켓을 우주로 보내는 단계를 넘어 여러 위성을 원하는 궤도에 정확하게 배치하는 기술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그 출발점은 모두 전남 고흥이었습니다. 고흥에는 이미 나로우주센터가 있으며 2022년에는 우주산업 클러스터 발사체 특화지구로 지정됐습니다. 현재 우주발사체 국가산업단지와 민간발사장, 발사체기술사업화센터, 엔진연소시험시설 등 관련 기반시설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전남광주시는 여기에 재사용발사체 시대를 대비한 제2우주센터 유치와 우주 체험·교육·관광시설 조성까지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미 충분히 고흥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K-스페이스X’일까요?
스페이스X는 세계 우주산업의 흐름을 바꾼 기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재사용 로켓 기술을 상용화하고 민간 우주발사 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가 참고하는 성공 사례가 됐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 역시 스페이스X와 같은 세계적인 우주기업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울 수 있습니다.문제는 그 목표를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K-스페이스X’라는 말은 듣는 순간 어떤 산업을 지향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대한민국 우주산업의 미래를 미국 기업의 이름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스페이스X는 우주산업을 의미하는 일반명사가 아니라 특정 기업의 고유한 이름입니다. 대한민국이 독자적인 발사체를 개발하고 자체적인 우주산업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면, 이제는 우리의 성과를 설명할 고유한 언어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만들어야 할 것은 한국판 스페이스X라는 별명이 아니라 세계가 그 자체로 기억하는 대한민국의 우주산업이기 때문입니다.

K만 붙이면 세계적인 사업이 될까요?
이러한 네이밍은 우주산업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부터인가 행정과 공공사업에서 ‘K-○○’라는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K-관광, K-푸드, K-바이오, K-콘텐츠 등 다양한 산업과 정책에 K라는 접두어가 붙습니다. 물론 K-팝이나 K-콘텐츠처럼 실제로 국제적인 인지도를 확보한 표현도 있습니다. 이러한 용어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문화와 산업을 세계에 알리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하지만 모든 지역사업과 정책에 K를 붙인다고 해서 그 사업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K를 붙이는 순간 마치 세계적인 사업으로 도약할 준비가 끝난 것처럼 표현하는 방식은 오히려 구체적인 목표를 흐릴 수 있습니다.
사업의 경쟁력은 이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기술을 확보했는지, 어떤 기업이 참여하는지,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지는지, 실제 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명품 ○○’, ‘스마트 ○○’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슷한 사례는 지역 행정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명품 도시’, ‘명품 관광지’, ‘명품 공원’, ‘명품 거리’ 같은 표현입니다. 무엇이 어떻게 명품이라는 것인지 구체적인 설명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스마트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마트 도시’, ‘스마트 관광’, ‘스마트 농업’, ‘스마트 행정’처럼 다양한 사업에 사용됩니다. 물론 스마트 기술이 실제로 적용되는 사업이라면 적절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데이터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업이라면 스마트라는 단어가 사업의 성격을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디지털 장비를 설치하거나 기존 시설을 개선하는 사업에까지 스마트라는 표현을 붙인다면 그 단어가 전달하는 의미는 점점 희미해집니다.
K를 붙이면 세계적인 사업이 되고, 명품을 붙이면 품격이 높아지고, 스마트를 붙이면 혁신적인 사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표현이 반복될수록 서로 다른 지역의 정책과 사업이 모두 비슷하게 느껴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지역의 특색을 살리겠다면서 이름은 모두 비슷합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다른 지역에는 없는 자연환경과 문화, 역사, 산업적 강점을 발굴하고 이를 지역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사업 이름에서는 비슷한 표현이 반복됩니다.어느 지역이나 명품 도시를 만들겠다고 하고, 스마트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하며,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K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지역의 고유한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그 가치를 설명하는 언어는 획일화되는 셈입니다.
고흥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발사장인 나로우주센터가 있고, 누리호가 반복적으로 우주로 향하고 있습니다. 우주산업 클러스터와 발사체 특화지구, 국가산업단지와 민간발사장 등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명확한 산업적 기반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고흥이 어떤 도시를 지향하는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굳이 미국의 특정 기업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고흥이라는 이름 자체에 대한민국 우주산업의 역사와 미래를 담을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실제 성과입니다
물론 이번 ‘K-스페이스X’라는 표현 하나로 전남광주시의 우주산업 정책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해당 표현은 민형배 시장이 정책 방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말이지, 공식 사업명으로 확정됐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또한 세계적인 성공 사례를 목표로 삼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도 아닙니다.하지만 정책을 설명하는 언어는 시민들이 그 사업을 이해하는 방식에 영향을 줍니다. ‘K-스페이스X 시대를 열겠다’는 표현보다 고흥에서 어떤 발사체를 생산하고, 어떤 시험시설을 만들며, 얼마나 많은 기업과 전문인력을 유치할 것인지 설명하는 편이 시민들에게는 더 구체적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 누리호 5차 발사는 핵심 임무에 성공했지만 부탑재위성 1기의 분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과제도 남겼습니다. 이처럼 실제 성과와 기술적 한계를 함께 설명하고 다음 발사에서 무엇을 개선할 것인지 제시하는 것이 우주산업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방법입니다. 지역의 미래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것은 화려한 수식어보다 구체적인 계획과 결과입니다.
언젠가는 세계가 고흥을 예로 들었으면 합니다
전남 고흥은 이미 대한민국 우주산업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역입니다. 나로호가 이곳에서 발사됐고, 대한민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누리호 역시 고흥에서 우주로 향했습니다. 앞으로는 발사체를 생산하고 시험하고 발사하는 산업기반까지 구축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과가 계속 쌓인다면 언젠가 고흥은 단순히 대한민국의 우주발사장이 아니라 세계 우주산업에서 하나의 사례로 언급되는 지역이 될 수도 있습니다.그때 필요한 이름은 ‘K-스페이스X’가 아닐 것입니다. 세계적인 기업을 참고하되 그 기업의 이름을 빌리지 않아도 우리의 기술과 성과를 설명할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행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K, 명품, 스마트 같은 익숙한 수식어를 반복하기보다 그 지역만이 가진 특징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언어를 찾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스페이스X를 빌려 고흥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른 나라가 고흥을 예로 들어 자신의 우주산업을 설명하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우주산업의 미래에 더 어울리는 목표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