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지방검찰청이라는 이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출범을 하루 앞둔 10월 1일, 전주시 만성동 전주지방검찰청에서는 기존 간판을 교체하는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10월 2일부터 기존 검찰청 체제는 공소청 체제로 전환됩니다. 검사가 직접 수사와 기소를 함께 담당했던 구조에서 수사와 기소 기능이 분리되면서 전주지방검찰청 역시 전주지방공소청으로 바뀌게 됩니다.
오랜 시간 전북의 주요 형사사건과 선거범죄, 기업범죄 등을 다뤄왔던 전주지검. 그 역사에는 수사 성과뿐 아니라 훗날 잘못된 판단으로 확인된 사건들도 함께 남아 있습니다.
전주지검의 간판이 내려가는 지금, 이곳을 거쳐 간 굵직한 사건들을 돌아봤습니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 17년 만에 뒤집힌 유죄

전주지검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 가운데 하나가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입니다.
1999년 2월 완주군 삼례읍의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했고, 이 과정에서 70대 여성이 숨졌습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3명의 청년을 범인으로 붙잡았고, 이들은 재판에 넘겨져 각각 징역 3~6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같은 해 부산에서 진범으로 의심되는 또 다른 3명이 붙잡히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들은 범행을 자백했고 사건은 전주지검으로 넘겨졌지만, 전주지검은 2000년 이들을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결국 최초 범인으로 지목됐던 ‘삼례 3인조’는 형기를 마쳤습니다.
사건 발생 17년이 지난 2016년 재심 결과는 무죄였습니다.
당시 전주지검은 재심 무죄 판결에 항소하지 않았고, 검찰과 경찰의 과거 수사 과정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습니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은 이후 수사기관의 강압수사와 잘못된 기소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법오류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익산 약촌오거리 사건, 10년 복역한 소년은 범인이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전북에서 발생한 또 하나의 대표적인 재심 사건이 있습니다.
2000년 8월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가 흉기에 찔려 숨졌습니다.
당시 15세였던 소년이 범인으로 지목됐고, 결국 징역 10년을 선고받아 복역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진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등장했고, 경찰 수사 과정에서 범행을 자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사건은 제대로 바로잡히지 못했습니다.
긴 시간이 흐른 뒤 재심이 시작됐고 2016년 법원은 기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전주지검 군산지청은 상고를 포기했고 검찰과 경찰도 과거 수사와 관련해 사과했습니다.
이후 검찰은 별도로 진범을 다시 수사해 재판에 넘겼습니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과 약촌오거리 사건은 비슷한 시기에 전북에서 발생했고, 모두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기존 유죄 판결이 재심을 통해 뒤집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고준희양 사건

2017년에는 전주에서 발생한 고준희양 사건이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당시 5살이었던 고준희양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접수되면서 대대적인 수색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되면서 준희양이 실종된 것이 아니라 이미 수개월 전에 숨졌으며, 친부 등이 시신을 군산의 한 야산에 유기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경찰과 검찰 수사를 통해 학대와 사망, 시신 유기, 뒤늦은 실종신고 과정이 차례로 밝혀졌습니다.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학대와 시신 유기라는 사건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공분이 일었습니다.


전주지검의 대형 기업수사, 이스타항공

2020년대 들어 전주지검을 전국적으로 알린 사건 가운데 하나는 이스타항공 관련 수사였습니다.
검찰은 이상직 전 국회의원이 이스타항공과 계열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수백억원 규모의 손해를 끼친 혐의 등을 수사했습니다.
특히 이스타항공 주식을 자녀들이 주주로 있는 회사에 저가로 매도하는 과정 등이 문제가 됐습니다.
이 전 의원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이후 재판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스타항공을 둘러싼 전주지검의 수사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무혐의 처리했던 ‘이스타항공 부정채용’ 재수사

이스타항공 채용 과정에서 특정 지원자들이 부당하게 합격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해당 사건은 경찰에서 두 차례 무혐의 판단이 내려졌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전주지검이 2022년 직접 재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검찰은 강제수사를 진행하며 채용 관련 자료와 관계자 진술 등을 확보했고, 결국 이상직 전 의원 등을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이스타항공 횡령·배임에 이어 부정채용 사건까지 이어지면서 전주지검이 진행한 대표적인 기업범죄 수사로 기록됐습니다.


311명 입건·152명 기소…2022년 지방선거

전주지검은 지역 정치권과 관련된 선거범죄 수사에서도 여러 차례 주목받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입니다.
당시 전북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인원은 모두 311명에 달했습니다.
이 가운데 152명이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유형별로 보면 흑색선전 관련 입건자가 87명으로 가장 많았고 금전선거 59명, 폭력선거 13명 등이었습니다.
기초단체장 선거와 관련해서만 206명이 입건됐으며 전북교육감 선거에서도 20명이 입건돼 14명이 기소됐습니다.
전주지검뿐 아니라 군산·정읍·남원지청까지 전북 전역에서 대규모 선거사범 수사가 진행됐습니다.
당시 현직 교육감과 시장 등 주요 선출직 공직자들도 재판에 넘겨지면서 지역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자원봉사센터에서 발견된 입당원서

같은 지방선거를 전후해 전북자원봉사센터를 둘러싼 관권선거 의혹도 불거졌습니다.
경찰이 전북자원봉사센터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민주당 입당원서와 당원 관련 자료가 발견되면서 수사가 확대됐습니다.
전주지검은 전북도청 전·현직 관계자 등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자원봉사센터라는 공공적 성격의 조직이 정당의 당원 모집 과정에 동원됐는지가 핵심 쟁점이 되면서 지역 정치권에서도 큰 논란이 됐습니다.


전주에서 시작해 전직 대통령까지 향했던 수사

이스타항공 관련 수사는 이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전 사위 취업 의혹으로까지 확대됐습니다.
전주지검은 이상직 전 의원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에 임명된 과정과 문 전 대통령의 당시 사위가 태국계 항공사 타이이스타젯에 취업한 과정 사이에 대가성이 있었는지를 수사했습니다.
전직 대통령과 가족이 관련된 사건인 만큼 전국적인 정치 쟁점으로 확대됐습니다.
다만 이 사건은 정치권의 주장과 검찰의 수사 논리, 당사자 측 반박이 첨예하게 맞섰던 사안인 만큼 수사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과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과와 과오가 함께 남은 전주지검

전주지방검찰청의 역사를 단순히 ‘해결한 사건’만으로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스타항공 사건이나 대규모 선거범죄처럼 검찰이 직접 수사해 재판으로 이어진 사건이 있는 반면, 삼례 나라슈퍼와 약촌오거리 사건처럼 과거 수사기관의 판단이 훗날 재심에서 뒤집힌 사건도 있습니다.
특히 두 재심 사건은 잘못된 수사와 기소가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지금까지도 한국 형사사법제도의 대표적인 오판 사례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까지 모두 포함해 ‘전주지방검찰청’이라는 이름이 남긴 기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전주지방공소청’으로
10월 1일 전주지방검찰청 청사에서는 기존 간판을 교체하는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10월 2일부터 검찰청이 폐지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 체제가 출범하면서 전주지방검찰청 역시 ‘전주지방공소청’으로 바뀝니다.
단순히 이름만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존 검찰이 갖고 있던 직접수사 기능과 기소·공판 기능이 분리되면서 공소청은 기소와 공판 유지 등을 중심으로 역할을 맡게 됩니다.
오랫동안 전북에서 발생한 수많은 사건의 수사와 기소를 담당했던 ‘전주지방검찰청’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과 약촌오거리 사건처럼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될 과오도 있었고,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던 기업범죄와 선거범죄 수사도 있었습니다.
간판은 내려가지만 그곳을 거쳐 간 사건과 판결, 그리고 수사기관이 남긴 성과와 과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전주지검의 마지막 간판이 내려가는 지금, 지난 시간을 함께 기록해둘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