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여사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넘었지만 전라도 곳곳에는 지금도 그의 이름과 관련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전남 나주와 전북 익산의 한센인 정착촌입니다.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강했던 1960~70년대 육 여사는 정착촌을 찾아 주민들을 만나고 생활과 자립을 위한 지원 활동을 펼쳤습니다.
전남 고흥 소록도에는 이러한 한센인 지원 활동을 기리는 공덕비와 양지회 기념관이 세워졌습니다.
전남 영광의 작은 섬 낙월도에도 육영수 여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중학교가 없어 섬 밖으로 나가야 했던 아이들을 위한 학교 설립을 지원했고, 육 여사가 세상을 떠난 뒤 주민들의 노력으로 실제 학교가 문을 열었습니다.
전라도에 남아 있는 육영수 여사의 흔적들을 살펴봤습니다.


나주 한센인 정착촌, 한센인들을 직접 만나다

육영수 여사는 1960~70년대 한센인 지원 활동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 흔적 가운데 하나가 전남 나주에 있습니다.
육 여사는 나주의 한센인 정착촌을 찾아 주민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당시 한센병은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은 여전히 심했습니다.
한센인 상당수가 일반 사회와 분리된 정착촌에서 생활했고 취업이나 경제활동에서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육 여사는 이러한 정착촌을 찾아 주민들의 생활환경을 살펴보고 지원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71년에는 한센인 출신 시인으로 잘 알려진 한하운과 함께 나주의 한센인촌을 방문한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익산 한센인 정착촌도 방문

전북 익산에도 육영수 여사의 한센인 관련 흔적이 있습니다.
육 여사는 1972년 9월 익산지역 한센인 정착촌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지원은 단순히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의약품을 비롯해 주민들이 직접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가축 등을 지원한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한센인들이 정착촌에서 스스로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생활 안정과 자립 기반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나주와 익산 방문은 당시 한센인들이 처했던 사회적 상황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고흥 소록도에 남은 육영수 여사 공덕비

한센병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전라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전남 고흥 소록도입니다.
소록도에는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새긴 공덕비가 세워졌습니다.
1974년 정부 기록영상에도 소록도에 세워진 육영수 여사 공덕비의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한센인들을 위해 이어온 지원 활동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주민들이 뜻을 모아 공덕비를 세운 것으로 전해집니다.
육 여사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한센인 지원과 관련된 그의 이름이 소록도에 남게 된 것입니다.

소록도에 세워진 ‘양지회 기념관’

소록도에는 공덕비뿐만 아니라 ‘양지회 기념관’도 만들어졌습니다.
양지회는 1964년 만들어진 고위 공직자 부인들의 봉사단체로 육영수 여사가 총재를 맡아 활동했습니다.
양지회는 한센인을 비롯해 당시 사회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활동을 펼쳤습니다.
소록도에 만들어진 양지회 기념관 역시 이러한 활동과 연결돼 있습니다.
1974년 대한뉴스 기록에는 육영수 여사 공덕비와 함께 양지회 기념관이 소개돼 있습니다.
현재 소록도에 남아 있는 시설들은 1970년대 한센인 지원 활동과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흔적이기도 합니다.


전남 영광의 작은 섬 ‘낙월도’

한센인 지원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
전남 영광군의 작은 섬 낙월도입니다.
1970년대 낙월도에는 중학교가 없었습니다.
섬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계속 공부하려면 가족과 떨어져 육지로 나가야 했고,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중학교 진학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1974년 이러한 낙월도의 교육환경이 육영수 여사에게 전달됐습니다.
육 여사는 섬 아이들을 위한 학교 설립과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계획이 실제 학교로 이어지기 전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육영수 여사가 피격돼 사망한 것입니다.
학교 설립 약속도 그대로 끝나는 듯했습니다.

세상을 떠난 뒤 지켜진 학교 설립 약속

육영수 여사가 세상을 떠난 뒤 낙월도 주민들은 다시 학교 설립을 추진했습니다.
육 여사가 생전에 섬 아이들을 위한 학교 설립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관계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결국 학교 건물이 마련됐고 1976년 ‘낙월 새마을중학교’가 정식 인가를 받아 문을 열었습니다.
육 여사가 학교 설립을 약속한 지 약 2년 만이었습니다.
이후 낙월도 아이들은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 반드시 섬을 떠나야 했던 부담을 덜 수 있게 됐습니다.


낙월도에 남은 육영수 여사 추모비

학교가 문을 연 뒤 낙월도에는 또 하나의 흔적이 만들어졌습니다.
주민들이 육영수 여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추모비를 세운 것입니다.
1976년 세워진 추모비에는 섬 아이들을 위한 학교 설립 과정에 얽힌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낙월도의 인구와 학생 수도 감소했고 학교 역시 통폐합을 거치며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육영수 여사와 학교 설립의 인연을 기록한 추모비는 옛 학교 부지에 남아 지역의 역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50년이 지나도 남아 있는 이야기

나주의 한센인 정착촌, 익산의 한센인촌, 고흥 소록도의 공덕비와 양지회 기념관, 그리고 영광 낙월도의 학교와 추모비.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성격도 다른 장소들이지만 모두 1960~70년대 육영수 여사의 사회활동과 연결돼 있습니다.
특히 이 장소들은 한 인물의 흔적을 넘어 당시 전라도의 모습도 함께 보여줍니다.
사회적 편견 속에서 정착촌을 만들어 살아가야 했던 한센인들의 삶이 있었고, 중학교 하나가 없어 어린 학생들이 고향 섬을 떠나야 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5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정착촌과 섬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이야기를 기록한 건물과 비석, 자료들은 지금도 전라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